어머니와 문자 ◁ 私

한참 음성채팅을 하던 새벽, 별안간 방문이 덜컥 열리며 어수선한 모습의 어머니가 나타났다.
"이것 봐!"
막 일어난 사람치고는 무척 생생한 목소리로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손에는 최근에 새로 구입한 신형 휴대전화가 있었다. 노크 없이 열린 문에 대한 불쾌감과 헤드폰으로 인해 어떤 의미로 그런 소리를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성의없게 뭐? 라고 물어보자, 어머니는 손에 든 휴대전화를 마구 흔들었다.
"이것 보라니까!"
약간 흥분한 상태의 목소리. 초롱초롱한 눈동자.
삐질 식은땀을 흘리며 물끄러미 바라보자, 어머니는 자랑스럽게 휴대전화의 커다란 액정 화면을 들이밀었다.
그곳에는 수줍게(?)도 『사랑해』라는 말이 적혀있는 문자 상태의 화면이 떠 있었다.
"아, 사랑해 네."
여전히 성의없게 대꾸하자, 어머니는 고개를 크게 끄덕거리며 응! 하셨다.
"이거 내가 쳤어!"
"응?"
"내가 했다고!"
그제야 왜 어머니가 내 방에 침입했는지 알 수 있었다.
대략 6~7년 정도 휴대전화를 사용하신 어머니는 여태 단 한 번도 문자를 사용해보신 적이 없었다. 그저 전화기로써만 휴대전화를 애용했을 뿐, 부가 기능 자체를 인지 못하셔서 문자는 읽되, 쓰지는 못하는 상황이었다.
상황 이해를 하고서야 난 조금 대단하다는 눈빛으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혼자 한 거야?"
"응, 그런데 이 다음이 진행이 안 돼. 조금 있다 알려줘."
당당하게 요구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은 마치 새로운 가수를 알아서 팬이 되어버린 소녀와 비슷했다.-_-;


약간의 시간이 경과된 뒤, 어머니에게 가니 어머니는 이미 준비 만전 상태였다.
안경까지 벗으시고 마치 막 글자를 배우는 아이처럼 눈동자를 초롱초롱 빛낸다. 난 그런 어머니에게 간단하게 몇 개의 글자를 쳐서 보여드린 뒤, 직접 쳐보게 했다. 쉽게 말해 받아쓰기했다.-_-;
솔직히 내가 글을 쓰고 있기는 하나, 막상 받아쓰기를 하려 하니 문장이 떠오르지 않았다.
급한 대로 옆에 있던 중화요릿집 메뉴를 펼쳐 볶음 짜장밥, 같은 걸 쳐보라 했다. 그리고 어서 오십시오, 같은 말도.
어머니는 내용은 상관없이 열심히 치시더니, "이래서 문자를 두 손으로 치는구나."하고 득도한 표정을 지으셨다.
요즘 애들은 한 손으로 해, 라고 해주려다가 나 역시 두 손으로 치는 실정이라 끄덕거렸다. 어머니는 몸으로 배운 진실이라며 무척 즐거워하셨다.

고작 새벽 5시, 우리 집은 휴대전화에서 나오는 버튼 음이 삑삑 하고 요란하게 울렸다.

대충의 글자를 써보신 어머니는 바로 『사랑해 아들』을 치더니, 한참 자고 있을 동생에게 문자를 보낸다.
그 다음에는 『오늘도수고해이모가』라고 치며 아는 분에게 문자를 또 보냈다.
한참 자고 있다가 문자를 받을 두 사람에게 난 속으로 죄송이라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저리 기분이 들뜬 분에게 지금 시각이 새벽이라는 게 과연 떠오르기나 하겠는가. 말릴 생각도 안 들었다. 킁.
어쨌든 약 20여 분간의 받아쓰기와 시범적으로 문자 두 개를 보내시더니, 어머니는 내 얼굴을 밀치며 잠깐 액정을 보지 말라고 했다.
하품을 찍찍 흘리며 기다리고 있자니, 옆에서 난리가 났다. 삑삑 소리가 요란하게 나고, 가끔 손가락으로 이불 위에 글자를 써보고 그러신다. 대략 2~3분의 시간이 지난 뒤, 어머니는 자랑스럽게 휴대전화를 내게 들이밀었다.
그곳에는 『딸열심히해서나좀호강시켜줘』라는 말이 적혀있었다. -ㅁ-;
난, 감동이 생기기보다는 띄어쓰기 알려드렸는데 왜 그건 안 하셨다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_-a

자기 위해 방으로 들어간 뒤에도 방문 틈으로 들려오는 버튼 음의 삑삑 소리는 여전했다. 어머니는 연방 무엇인가를 치고 계셨다. 그것은 내가 잠들기 전까지 계속 이어졌다.

문득, 약 4~5개월 뒤 어머니에게서 화려한 이모티콘이 담긴 문자를 받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수문자표를 보며 눈동자를 반짝이던 어머니를 생각하면 의외로 2~3개월도 안 걸릴지도 모른다.

정지중인 내 휴대전화를 어머니를 위해서 살려야 할지도.-_-;
그런 생각이 드는 새벽이었다.


어머니 휴대전화 요금에도 드디어 문자 관련된 요금이 생길 것을 확신한 아침. 해쨍쨍


덧글

  • 프쉬케 2005/10/31 12:31 # 답글

    .. 지나가려다 어머니가 너무 귀여우셔서 글 남기고 갑니다^^
  • edou 2005/10/31 12:34 # 답글

    띄어쓰기 해주면 문자를 많이 못 넣자네! 어머님은 본능적으로 잘하고 계신 거지. 마꼴님 효도했네. ^^
  • Myggol 2005/10/31 12:51 # 답글

    프쉬케님/ 귀엽다니요; 새벽에 침입 당한 전...; ^^;;
    도우님/ 어차피 길게 보낼만한 실력은 아니라 사료됩니다만? 엔드, 효도가 아니라 우격다짐이었죠; 솔직히 신기하기도 했음;
  • RAKU 2005/10/31 14:50 # 답글

    울 엄니보단 나으시네. 몇 년째 문자 버튼 누르는 법을 가르쳐드려도 매번 볼 때마다 다시 가르쳐 달라고 하는 울 엄니. -_-
  • Myggol 2005/10/31 15:23 # 답글

    라꾸님/ 생각보다 재미 들리셨는지 잘 배우시던데요; 역시 재미가 가장 중요한거지 싶소.-_-
  • eHan 2005/10/31 15:41 # 답글

    오오, 저희 모친은 알람설정하는 거 배우시고 매시간마다 해놔서 거의 잠을 못자요 -_-;
    그치만 그래도 좀 구여우신거 같어요 ㅋㅋㅋ
    (근데 저두 문자보낼때 띄어쓰기 안 하는데, 애들이 무슨 암호같다고 0,0)
  • 유지혜 2005/10/31 19:07 # 답글

    역쉬 싸부님은 어머님도 멋진 분을 드셨구랴.
    역쉬 싱클의 싸부로서 손색이 없어요.
    어머님 멋지심돠~짝짝짝..^^
  • 박미연 2005/10/31 22:24 # 답글

    안가르켜 드렸더니 스스로 하시더군요ㅠ,..ㅠ 효녀세요^^ 새로운 마꼴온의 모습^^
  • Myggol 2005/10/31 23:20 # 답글

    저얼대! 효도가 아니거든.-_-; 어무이의 주책? 혹은 성장일뿐;
    난 힘 없는 백수일세~(=_=)~
  • brightwood 2005/11/01 00:40 # 답글

    오...
※ 이 포스트는 더 이상 덧글을 남길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