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뵌 것은 97년의 봄이었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하지 못한다. 단지 97년이었다는 것과 날이 따뜻했던 봄이라는 것, 그리고 그날이 할머니 장례식이었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다.
유난히 당신을 예뻐하시던 할머니가 하늘로 가신 것에 아버지는 무척 힘들어하셨었다. 당시의 기억은 전부 흐릿한데도 할머니를 보내며 이를 악물고 우시던 아버지의 모습만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을 한다. 그 모습이 내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뵌 모습이 되리라고는 그 당시엔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다. 미리 알았더라면, 다른 모습을 기억하도록 노력이라도 했을 텐데. 이제 와서 말하기엔 너무 늦은 일이다.
난 참으로 아버지를 많이도 미워했더랬다. 당신의 성격, 얼굴을 참 많이 닮아서, 비슷한 면이 수도 없이 많은 탓에, 자기혐오처럼 아버지를 열심히 미워했더랬다. 음력 생일이 같은 것마저 밉다는 이유로 20살 이후 아버지의 생일과 이틀 차이가 나는 양력 생일을 내 생일이라고 제멋대로 정했을 정도로, 아버지와 똑같다는 것을 부정하며 미워하고 또 미워했다.
19살에 어머니와 이혼한 이후엔 아버지라 부르기도 싫어, 아저씨라고 남 부르듯 원망을 가득 담아 외치기도 했었다. 조금 시일이 지나 그리 부르는 게 헛된 미련과 비틀린 애정의 증명이라고 느껴 다시 아버지라고 부르기 시작하긴 했지만, 그나마도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게 입에 올렸을 뿐이다. 어린 시절 그토록 입에 달고 살던 아빠라는 말은 20살 이후 아예 입에 담은 적도 없었고.
잊으려고 했었다. 내게 아버지란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아예 잊고 살려고 했었다. 동생놈이 슬그머니 아버지에 대해 언급을 해도 못 들은 척 가장하며 무시했었고, 김 여사가 어디선가 물어온 아버지에 대한 소식도 알게 뭐냐며 콧방귀를 뀌었었다. 표면적으로 난 아버지를 완전히 잊은 조금 매정한 딸이었다. 아니, 조금이 아니라 많이 매정한 딸이었다.
그렇지만, 앙금처럼 남은 아버지란 존재를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다. 동생놈이 아버지를 뵙고 오면 관심이 전혀 없는 척하면서도 귀를 쫑긋 세워 아버지의 일신을 들었고, 아버지가 사는 동네 근처에라도 갈 때면 아무도 모르게 주변을 살피곤 했다. 혈연이라는 게 그런 것인지, 머리로는 완전히 끊었다고 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가는 관심을 아예 끊지는 못했다. 그러나 난 그런 나 자신의 모습마저 부정하며 아버지를 잊었다고 단언하곤 했었다.
그렇게 잊었다고 단언하며 관심도 아예 없다고 했던 아버지였는데... 아버지는 내게 관심이 지대했던 듯했다. 장례식장에서 뵈었던 아버지의 지인 분들은 하나같이 날 참 보고 싶어 했다고, 많이 자랑하셨다고 입을 모으셨다. 아버지를 참 많이 닮았다는 말과 함께...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꽤 오래전부터 날 참 보고 싶어 했었다. 없는 병을 가장해서 죽기 전에 날 한번 보고 싶다고도 했었고, 느닷없이 밤늦게 김 여사에게 전화를 걸어 내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끝도 없이 조르시기도 했었다. 또한, 내 책이 나온다는 소식에 100권 산다는 허풍을 떠시며 내심 내가 책 들고 오시기를 바라기도 하셨었다. 동생놈과 이따금 만났었을 때에도 내 이야기를 묻는 듯했으나, 내가 싫어할 게 빤해 동생놈은 그런 이야기를 되도록 하지 않았었다. 고작 하는 말은 한 번 날 보고 싶어 하셨다는 말뿐.
이런 상황에 아버지의 지갑 속에서 발견한 손때가 묻어 꼬질꼬질해진 천 엔짜리 지폐는 왠지 모르게 의미심장하기만 하다. 생전 일본 여행은커녕 해외여행도 안 해 보신 것으로 아는데, 그런 분의 지갑 속에 왜 천 엔짜리 지폐가 있는 것인지. 그것도 오랫동안 만진 것처럼 손때가 묻어 있는 게...
나 때문일까? 딸내미가 일본 유학 중일 때, 어디선가 우연하게 구해 가지고 계셨던 건 아닐까?
동생놈이 예전에 내가 미국 여행을 가기 전, 난데없이 1달러짜리 지폐를 내밀었던 적이 있다. 자신이 어렵게 구한 것이라며 꼭 미국 가서 쓰라고 말이다. 나중에 듣기론 반 친구 중 하나가 1달러를 보이기에 제 누나 미국 여행 갈 때 좀 도움이 될까 싶어서 일부러 천 원 주고 샀댔다. 사실 여행가기 전에 미리 환전해 둬서 그럴 필요까지 없었는데도. 어쨌든 동생놈이 준 그 1달러짜리 지폐는 지금도 내 지갑 속에 보관되어 있다.
그런 일화를 겪어서일까? 아버지가 가지고 계시던 생뚱맞은 천 엔짜리 지폐와 그때 그 일화가 겹친다. 아버지 역시 누군가가 가진 천 엔짜리 지폐를 일부러 사서, 유학 중이던 날 행여나 만나게 되면 주실 생각은 아니셨을까? 그러나 주지 못하게 되어 계속 갖고 계신 게 아니었을까?
아버지를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으니, 이건 어디까지나 내 추측이다. 동생놈 역시 아무것도 모르니, 이 추측이 해결될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의 유품으로 난 그 천 엔짜리 지폐를 받고 싶다고 했다. 동생놈이 예전에 준 1달러짜리 지폐 옆에 그 천 엔짜리 지폐를 두고 싶은 마음에 말은 해 두었지만, 이래저래 꼬인 사정 때문에 내가 그 천 엔짜리 지폐를 손에 쥘 수 있을지 그건 미지수다. 그렇지만, 가능하면 받고 싶다. 아니, 받아서 내가 갖고 있어야 할 것 같다. 당신이 주고 싶으셨던 것으로 추정하는 그 천 엔, 내가 잘 받아서 갖고 있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어서, 꼭.
참 이상한 일이다. 그렇게 미워했고, 어서 돌아가시길 바랐었는데...진짜 돌아가시고 나니, 남는 것은 온통 후회뿐이다. 다시는 안 보겠다던 내 결정을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게 이렇게 가슴에 깊은 생채기로 남을 줄은 몰랐다. 사진이라도 한 장, 동생놈 손에 살짝 쥐여줄 것을 그랬다. 인터넷에도 쉽게 올리는 사진 한 장, 뭐 그리 대단한 것이라고 드리지도 못했는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은 외모를 가졌다는 걸 위로 아닌 위로로 삼고 있긴 하나, 알량하기 짝이 없는 위로다. 뒤늦은 후회로 범벅이 된 바보 짓이다. 후우.
날 보는 게 그토록 원이셨다던 아버지. 그 원을 끝까지 고집을 부리며 무시했던 나.
그런 딸내미의 고집스러움을 아시는 아버지는 내가 태어난 달에 돌아가셨다. 덕분에 난 평생 내가 태어난 달마다 아버지를 떠올려야 할 것이다. 그게 아버지의 바람이셨다는 생각이 든다. 10년 넘게 얼굴 안 보인 불효를 그렇게라도 다시 받고 싶으셨던 게 분명하다. 보고 싶다고 그렇게 노래해도 얼굴 한 번 안 보인 딸내미에 대한 괘씸함을 이렇게 풀고 싶으셨던 거겠지. 이렇게라도 내게 잊히고 싶지 않으셨던 거겠지.
그래요, 아버지.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당신과 똑 닮은 딸이 매번 생일을 맞이할 때마다 아버지를 떠올릴게요.
아버지에게 저지른 불효, 그렇게 조금씩 마음으로 갚아 나갈게요.
걱정마세요.
당신과 똑 닮아서 겉으론 강한 척하면서도 은근히 속은 여리기 짝이 없잖아요.
당신과 똑 닮아서 끝까지 모질지는 못하잖아요.
잊고 싶어도 잊지 못합니다.
잊은 척해도 속으로는 전혀 잊지 못하곤 아버지를 계속 떠올릴 거예요.
그러니까 마음 놓고 편히 올라가세요.
거기서 편하게 당신 좋아하시던 것들 즐기시며 지내세요.
당신 딸이 평생 잊지 않고 기억하며 살아갈 테니까.
편히, 편히 가세요.
잘 가요, 아빠.
유난히 당신을 예뻐하시던 할머니가 하늘로 가신 것에 아버지는 무척 힘들어하셨었다. 당시의 기억은 전부 흐릿한데도 할머니를 보내며 이를 악물고 우시던 아버지의 모습만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을 한다. 그 모습이 내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뵌 모습이 되리라고는 그 당시엔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다. 미리 알았더라면, 다른 모습을 기억하도록 노력이라도 했을 텐데. 이제 와서 말하기엔 너무 늦은 일이다.
난 참으로 아버지를 많이도 미워했더랬다. 당신의 성격, 얼굴을 참 많이 닮아서, 비슷한 면이 수도 없이 많은 탓에, 자기혐오처럼 아버지를 열심히 미워했더랬다. 음력 생일이 같은 것마저 밉다는 이유로 20살 이후 아버지의 생일과 이틀 차이가 나는 양력 생일을 내 생일이라고 제멋대로 정했을 정도로, 아버지와 똑같다는 것을 부정하며 미워하고 또 미워했다.
19살에 어머니와 이혼한 이후엔 아버지라 부르기도 싫어, 아저씨라고 남 부르듯 원망을 가득 담아 외치기도 했었다. 조금 시일이 지나 그리 부르는 게 헛된 미련과 비틀린 애정의 증명이라고 느껴 다시 아버지라고 부르기 시작하긴 했지만, 그나마도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게 입에 올렸을 뿐이다. 어린 시절 그토록 입에 달고 살던 아빠라는 말은 20살 이후 아예 입에 담은 적도 없었고.
잊으려고 했었다. 내게 아버지란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아예 잊고 살려고 했었다. 동생놈이 슬그머니 아버지에 대해 언급을 해도 못 들은 척 가장하며 무시했었고, 김 여사가 어디선가 물어온 아버지에 대한 소식도 알게 뭐냐며 콧방귀를 뀌었었다. 표면적으로 난 아버지를 완전히 잊은 조금 매정한 딸이었다. 아니, 조금이 아니라 많이 매정한 딸이었다.
그렇지만, 앙금처럼 남은 아버지란 존재를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다. 동생놈이 아버지를 뵙고 오면 관심이 전혀 없는 척하면서도 귀를 쫑긋 세워 아버지의 일신을 들었고, 아버지가 사는 동네 근처에라도 갈 때면 아무도 모르게 주변을 살피곤 했다. 혈연이라는 게 그런 것인지, 머리로는 완전히 끊었다고 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가는 관심을 아예 끊지는 못했다. 그러나 난 그런 나 자신의 모습마저 부정하며 아버지를 잊었다고 단언하곤 했었다.
그렇게 잊었다고 단언하며 관심도 아예 없다고 했던 아버지였는데... 아버지는 내게 관심이 지대했던 듯했다. 장례식장에서 뵈었던 아버지의 지인 분들은 하나같이 날 참 보고 싶어 했다고, 많이 자랑하셨다고 입을 모으셨다. 아버지를 참 많이 닮았다는 말과 함께...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꽤 오래전부터 날 참 보고 싶어 했었다. 없는 병을 가장해서 죽기 전에 날 한번 보고 싶다고도 했었고, 느닷없이 밤늦게 김 여사에게 전화를 걸어 내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끝도 없이 조르시기도 했었다. 또한, 내 책이 나온다는 소식에 100권 산다는 허풍을 떠시며 내심 내가 책 들고 오시기를 바라기도 하셨었다. 동생놈과 이따금 만났었을 때에도 내 이야기를 묻는 듯했으나, 내가 싫어할 게 빤해 동생놈은 그런 이야기를 되도록 하지 않았었다. 고작 하는 말은 한 번 날 보고 싶어 하셨다는 말뿐.
이런 상황에 아버지의 지갑 속에서 발견한 손때가 묻어 꼬질꼬질해진 천 엔짜리 지폐는 왠지 모르게 의미심장하기만 하다. 생전 일본 여행은커녕 해외여행도 안 해 보신 것으로 아는데, 그런 분의 지갑 속에 왜 천 엔짜리 지폐가 있는 것인지. 그것도 오랫동안 만진 것처럼 손때가 묻어 있는 게...
나 때문일까? 딸내미가 일본 유학 중일 때, 어디선가 우연하게 구해 가지고 계셨던 건 아닐까?
동생놈이 예전에 내가 미국 여행을 가기 전, 난데없이 1달러짜리 지폐를 내밀었던 적이 있다. 자신이 어렵게 구한 것이라며 꼭 미국 가서 쓰라고 말이다. 나중에 듣기론 반 친구 중 하나가 1달러를 보이기에 제 누나 미국 여행 갈 때 좀 도움이 될까 싶어서 일부러 천 원 주고 샀댔다. 사실 여행가기 전에 미리 환전해 둬서 그럴 필요까지 없었는데도. 어쨌든 동생놈이 준 그 1달러짜리 지폐는 지금도 내 지갑 속에 보관되어 있다.
그런 일화를 겪어서일까? 아버지가 가지고 계시던 생뚱맞은 천 엔짜리 지폐와 그때 그 일화가 겹친다. 아버지 역시 누군가가 가진 천 엔짜리 지폐를 일부러 사서, 유학 중이던 날 행여나 만나게 되면 주실 생각은 아니셨을까? 그러나 주지 못하게 되어 계속 갖고 계신 게 아니었을까?
아버지를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으니, 이건 어디까지나 내 추측이다. 동생놈 역시 아무것도 모르니, 이 추측이 해결될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의 유품으로 난 그 천 엔짜리 지폐를 받고 싶다고 했다. 동생놈이 예전에 준 1달러짜리 지폐 옆에 그 천 엔짜리 지폐를 두고 싶은 마음에 말은 해 두었지만, 이래저래 꼬인 사정 때문에 내가 그 천 엔짜리 지폐를 손에 쥘 수 있을지 그건 미지수다. 그렇지만, 가능하면 받고 싶다. 아니, 받아서 내가 갖고 있어야 할 것 같다. 당신이 주고 싶으셨던 것으로 추정하는 그 천 엔, 내가 잘 받아서 갖고 있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어서, 꼭.
참 이상한 일이다. 그렇게 미워했고, 어서 돌아가시길 바랐었는데...진짜 돌아가시고 나니, 남는 것은 온통 후회뿐이다. 다시는 안 보겠다던 내 결정을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게 이렇게 가슴에 깊은 생채기로 남을 줄은 몰랐다. 사진이라도 한 장, 동생놈 손에 살짝 쥐여줄 것을 그랬다. 인터넷에도 쉽게 올리는 사진 한 장, 뭐 그리 대단한 것이라고 드리지도 못했는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은 외모를 가졌다는 걸 위로 아닌 위로로 삼고 있긴 하나, 알량하기 짝이 없는 위로다. 뒤늦은 후회로 범벅이 된 바보 짓이다. 후우.
날 보는 게 그토록 원이셨다던 아버지. 그 원을 끝까지 고집을 부리며 무시했던 나.
그런 딸내미의 고집스러움을 아시는 아버지는 내가 태어난 달에 돌아가셨다. 덕분에 난 평생 내가 태어난 달마다 아버지를 떠올려야 할 것이다. 그게 아버지의 바람이셨다는 생각이 든다. 10년 넘게 얼굴 안 보인 불효를 그렇게라도 다시 받고 싶으셨던 게 분명하다. 보고 싶다고 그렇게 노래해도 얼굴 한 번 안 보인 딸내미에 대한 괘씸함을 이렇게 풀고 싶으셨던 거겠지. 이렇게라도 내게 잊히고 싶지 않으셨던 거겠지.
그래요, 아버지.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당신과 똑 닮은 딸이 매번 생일을 맞이할 때마다 아버지를 떠올릴게요.
아버지에게 저지른 불효, 그렇게 조금씩 마음으로 갚아 나갈게요.
걱정마세요.
당신과 똑 닮아서 겉으론 강한 척하면서도 은근히 속은 여리기 짝이 없잖아요.
당신과 똑 닮아서 끝까지 모질지는 못하잖아요.
잊고 싶어도 잊지 못합니다.
잊은 척해도 속으로는 전혀 잊지 못하곤 아버지를 계속 떠올릴 거예요.
그러니까 마음 놓고 편히 올라가세요.
거기서 편하게 당신 좋아하시던 것들 즐기시며 지내세요.
당신 딸이 평생 잊지 않고 기억하며 살아갈 테니까.
편히, 편히 가세요.
잘 가요, 아빠.
480401-090303 朴龍喜
0903042240, 복지병원6호실, 벽제10호실, 남경수목원
이 글을 끝으로 이제 아버지에 대한 토로는 끝.
하지만 끝까지 독하지 못해서 또 쓸지도...
0903042240, 복지병원6호실, 벽제10호실, 남경수목원
이 글을 끝으로 이제 아버지에 대한 토로는 끝.
하지만 끝까지 독하지 못해서 또 쓸지도...
















덧글
유키라 2009/03/08 11:44 # 답글
저 천엔이 꼭 언니에게 오길 빌어드릴께요...꾸아아악~~~!
Myggol 2009/03/10 01:57 #
고마우이. 너무 꽉 껴안지는 마. 위장 터질까 두렵네, 그려. ^^;
purpledog 2009/03/08 14:14 # 답글
꼭 마꼴님 지갑에 들어오길...
Myggol 2009/03/10 01:56 #
감사합니다. 꼭 손에 들어오길 저 역시 바라고 있습니다. 연달아 이런 글에 이렇게 덧글 달아 주셔서 감사하는 마음을 금할 수가 없네요. 보라개님, 정말 고맙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많이요. ^^
2009/03/08 21:20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Myggol 2009/03/10 01:48 #
네 말 전부 옳아. 말하는 게, 쓰는 게 감정을 정리하기엔 더 낫겠지. 그래서 마지막 토로라고 해 놓곤 마지막에 또 쓸지도 모른다고 덧붙였잖아. 솔직히 나도 이게 끝이 될 것이라고는 자신하지 못하겠더라고. ^^;; 어쨌든 고맙다. 멀리서도 걱정해 줘서 한결 마음이 따뜻해. 조금도 네가 나댄다고 느끼지 않았으니까, 그것 역시 걱정 말고.몸 조심히 어머니랑 시간 잘 보내~
yumi 2009/03/09 09:58 # 삭제 답글
아침부터 눈물이 핑그르 돈다.멀리있어서 덧글 밖에 위로를 못해 미안하다..
그래서 오늘 니꿈을 꿨나 부구나..
니맘 추스릴때 쯤에 전화 할게
Myggol 2009/03/10 01:50 #
날 보다니! 복권 사 둬...라고 하기엔 너무 늦은 건가? 흐흐흐.생각보다 많이 정리는 되었어. 아직도 롤러코스터처럼 감정이 들쑥날쑥할 때가 있긴 해도, 뭐 그건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아무튼 당장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단 나으니까 걱정 말그라. ^^
대공학자 2009/03/09 11:40 # 삭제 답글
뭐랄까... 마양과 난 닮은 꼴이구나... 라는 생각이 드네.나도 그리 후회할 날이 와버릴까 걱정도 되고.
그런데도 그 미움은 사그라들지 않으니
훌훌털어낸 마양이 조금은 부럽기도...
Myggol 2009/03/10 01:55 #
사실 지금도 미움과 후회가 번갈아 들곤 해요. 이놈의 망할 인간, 끝까지 자식들 가슴에 못 박고 가는구나, 하는 미움과 범벅이 된 마음도 들고, 못난 자식이라는 후회도 들고...훌훌 털어냈다고 하기엔 아직 한참 부족할 거예요. 원래 상처라는 게 다 나아서 딱지가 떨어져도 그 기억은 오래오래 남잖아요. 아마도 평생 남는 게 아닐까...싶네요.
그래서 저와 닮은 꼴이라는 언니에게 헛된 말은 안 할게요. 주제 넘게 간섭할 일도 아닐 것 같고요. 그저 마음이 내키는대로 하는 게 최선이겠죠. 전 그게 내키는 대로 한 최선이었고, 그 최선을 믿지 못해서 이렇게 후회하는 것뿐이니까요.
2009/03/11 14:21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Myggol 2009/04/11 17:36 #
이제 와서 답글을 다네요. 그 마음 정말 감사합니다. 이젠 한달도 지났고, 정리도 다 되었습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또 그렇게 살게 되더라고요. 희한한 일이죠. 이 글을 올리던 때엔 참 마음이 울컥했었는데... 시간이 약은 약인가 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