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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가만한 바람
[종이책] 가만한 바람 [전자책] 붕어빵으로 인생을 논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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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라한 그곳의 해맑은 그분
일기예보가 알려준 숫자는 29도. 그러나 몸이 느끼는 기온은 33도 이상. 바람도 전혀 안 불고, 그늘 하나 없는 거리로 내리쬐는 뙤약볕은 살갗을 태울 듯이 뜨겁기만 했다. 일정이 없었다면 아예 안 나왔을 것이다. 집에서 선풍기를 앞에 두고 유유자적하게 있었을 텐데, 일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온 길, 난 구시렁거리며 어서 일정을 끝내고자 발걸음을 서둘렀었다.

그런 때, 군민회관 앞에 놓인 하얀 천막을 발견했다. 설마, 저게 분향소인가?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전에 두어 개의 화환과 커다란 현수막에 쓰인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가 보였다. 아, 이게 분향소구나. 그래도 국민장이라고 이런 촌에도 만들긴 했나 보다.

사실 내내 찜찜했었다. 집 근처에는 도통 생기지 않는 분향소 때문에 은근히 속도 탔었다. 결국 서울로 가서 분향을 해야 할까? 일부러 서울로 가서 분향하는 게 왠지 오버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 먼 봉하까지 가서 분향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별거 아닌 것도 같았다. 늦기 전엔 가서 분향하는 게 낫겠지.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단 좀 버겁더라도 가서 하고 오자, 하고 마음만 먹었더랬다. 그래, 마음만. 움직이기 싫어하는 몸이 버텨서 실행은 못 했지만...

그런 와중에 발견한 분향소는 반갑기 그지없었다. 안도감마저 들었다. 서울까지 안 가도 이곳에서 분향할 수 있겠구나. 알량한 난 그것만으로도 기뻐했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서 본 분향소는 참으로 초라했다. 주차장 구석에 놓인 새하얀 천막 아래, 두어 개의 책상과 좋은 재질이 아닌 것으로 보이는 나무돗자리, 그리고 갈색 나무 탁자 위에 놓인 해맑은 그분의 영정과 그 앞에 놓인 국화 스무 송이 남짓. 향로 위에서 타는 대여섯 개의 향이 그나마 다른 분이 왔다가 갔다는 것을 짐작하게 했을 뿐, 방문자는커녕 주변에 행인도 전혀 없었다. 오로지 초로의 노인 세 분이 더위에 지친 얼굴로 초라한 분향소를 지키고 있었다.

더위가 사람들을 안 오게 한 것일까? 아니면 무관심한 것일까? 그도 아니면... 그저 내가 시간을 잘못 골라서 온 것일까?

여성분이 건네준 국화 한 송이를 영정 앞에 두고 좋은 곳에서 쉬시라고 절을 하곤 나왔다. 그러자 여성분이 글을 남기라며 날 잡았다. 딱히 개인 정보를 공개하고 싶지 않아 안 하려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방문자가 없는 이곳에 그래도 한 명이 왔다 갔다는 흔적을 남겨야 다른 분들이 와서 다행이라고 할지도 모르니까.

아마 나 같은 생각을 하신 분들이 그래도 좀 있었던 모양이었다. 언뜻 본 방명록은 제법 방문객의 이름을 담고 있었다. 내 예상보단 많이. 하지만 결코 많은 축도 아닌.

더 없이 초라한 분향소에 적게라도 사람들이 방문한다는 것은 분명히 다행이긴 했다. 그래도 그 초라한 분향소의 모습은 아니다. 절대 아니다. 이게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라면 그들은 예우의 의미를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그분은 이런 예우를 받으실 분이 아니라고, 이렇게 할 바엔 차라리 가족장으로 치루게 하지 그랬냐는 생각마저 들었다.

원하는대로 분향은 했지만 찜찜함이 가시질 않았다. 이곳 저곳에 생긴 정부가 만든 분향소도 이곳과 별 차이가 없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다. (그나마도 없는 곳도 있을 것이다.) 사진으로 봤던 시민들이 만든 분향소는 규모는 작더라도 초라한 느낌은 받지 못 했었는데, 정부가 만든 곳은 그저 초라할 뿐이었다. 구색 맞추기, 혹은 보여주기 행정의 방증.

민주 "정부, 마지못해 국민장 치루나?" [뉴스 링크: 네이션 코리아]

하늘에서 그분이 이 꼴을 보신다면, 기대도 안 했다고 하실지도 모르겠다. 아니 애당초 기대를 걸 필요성도 못 느끼셨겠지.

어쨌든, 초라한 곳에 계셨지만 그분의 웃는 얼굴은 참으로 해맑았다. 봉하마을 사진 속에서 보던 참 밝고도 편한 얼굴. 실제로 한 번은 보고 싶었던 그 얼굴이었다.

올라가셔서도 그렇게 밝은 얼굴로 계속 지내셨으면... 아래엔 이제 신경 끄시고 편하게, 편하게...


아참, 그곳에서 저희 아버지를 만나신다면 안부 좀 전해주시길.
딸내미가 유품 잘 간직하고 있다고,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고.
어쩌면 서로 다른 곳에 계실 수도 있지만, 혹시 만나신다면 안부를 전해주시길 부탁합니다.

깜빡 전하는 걸 잊었는데, 꽤 개성이 강하신 분이라서 만나신다면 적적하지 않으실 겁니다. 아마도요. ^^

그곳에서 편히 지내시길, 노짱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__*)
by Myggol | 2009/05/26 17:32 | △ 書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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